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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전/역사

봉건제도(feudalism) 10세기 중세유럽의 혼란의 시대에 완성되다

by show쇼 2018. 8. 4.

봉건제도(feudalism) 10세기 중세유럽의 혼란의 시대에 완성되다





서로마의 멸망,, 프랑크 왕국의 세력다툼,,,

영토 분할을 둘러싼 혈육간의 싸움이 끝나자, 이번에는 이민족의 침입이 뒤따르게 됩니다.

북쪽으로는 비이킹이라고 하는 노르만 족이 침입해 오고, 동쪽에서는 마자르 족이, 남으로는 이슬람 세력이 물 밀 듯 들이 닥쳤습니다.

이민족의 침입이 지나간 곳은 약탈과 살상 행위로 농작물이나 가축, 사람들까지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혼란의 시대가 한동안 계속되었는데 중세 사회의 독특한 질서인 봉건제도(feudalism)는 바로 이런 혼란한 시대에 곧 완성되어 갑니다.






봉건제도란 주종(主從)제도와 장원(莊園)제도가 결합된 중세 특유의 정치, 경제, 군사, 사회적 지배질서를 말하는데, 주종제도란 주군이 신하(봉신)에게 토지(봉토)를 하사하고 신하는 충성과 복종을 맹세하여, 주군은 신하를 보호하고 부양할 책임을 지며 신하는 주군을 위해 군사력 제공의 의무를 지는, 생명과 재산을 상호보호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이것은 당시의 혼란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계약관계로부터 출발하게 됩니다.




땅을 매개로 한 이 주종관계는 거대한 미라미드를 이루고 있었는데, 왕 또는 황제가 맨 꼭대기에 위치하고, 그 밑에는 공작이, 또 그 밑에 후작과 백작이,,,, 하는 방식이며, 평기사는 지배계급의 최말단 이었습니다.

피라미드의 맨 밑에는 농민이 자리했는데 수적으로는 이들이 제일 많았습니다.


땅은 중세 사회를 유지하는 경제적 기반이었고 봉신들은 자기 땅을 효율적으로 경영하기 위해 하나의 경작 단위로 만들었습니다.

이를 장원이라고 합니다.

장원의 주인을 영주라 했는데, 농민은 영주로 부터 농사지을 땅을 받는 대신 영주에게 세금과 부역을 바칠 의무가 있었습니다. 영주의 원한은 절대적이었으며 최말단 평기사라 하더라도 자기 영지 내에서는 왕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