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집현전/역사

고구려의 실제 건국자는 유리왕(琉璃王) [유리명왕(瑠璃明王)]이었다?

by show쇼 2018. 8. 10.

고구려의 실제 건국자는 유리왕(琉璃王) [유리명왕(瑠璃明王)]이었다?





주몽을 두고 부여 출신의 고구려 건국자라고 설명하지 않고 졸본부여의 계승자로 소개한 백제의 온조설화가 어떤 부분에서는 고구려의 건국신화보다 주몽의 입지에 대해 더 정확하게 묘사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한가지 예로서, 고구려의 유리왕(琉璃王) [별칭 : 유리명왕(瑠璃明王)]에 대한 설화를 들수도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소개된 유리왕 설화에 의하면 유리는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얻은 부인이 주몽의 독신 남하 후에 낳은 아들입니다.

부여에서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멸시를 당하던 유리는 아버지가 낸 수수께끼를 풀어 주춧돌 아래 숨겨진 칼 조각을 찾아낸 뒤 남녘에서 왕이 된 아버지 주몽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아버지 주몽과 마찬가지로 유이도 옥지(屋智). 구추(句鄒). 도조(都祖) 3명과 함께 남하하였으며, 주몽을 만나 태자에 책봉된 뒤 왕위를 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규보(李奎報)의 "동명왕편"에 실린 고구려의 건국신화에서는 한 대목이 덧붙여져 있는데 칼을 맞대어본 주몽이 "너는 진짜 내 아들이다. 무슨 신성한 것이 있느냐?" 라고 물었더니, 유리가 몸을 날려 공중에 솟아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타는 재주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주몽의 능력에 육박하는 실력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죠, "삼국사기"보다 "동명왕편"에 인용된 설화가 원형에 가깝다는 것을 널리 알려진 사실로 그렇다면 실제 고구려의 건국신화에서는 주몽의 건국에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유리명왕의 출혈과 즉위로 종결되는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고구려의 건국은 유리명왕의 즉위를 통해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백제의 온조왕은 건국하자마자 동명왕묘부터 세웠다고 하는데, 위패를 모셔두고 제사지내는 곳을 묘(廟)라고 합니다. 여기의 동명왕이 부여의 건국자를 말하는지, 아니면 고구려의 주몽을 지칭한 것인지는 정확지는 않지만 온조왕이 주몽의 아들을 자처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주몽이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면 백제인들은 왜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을 제사 지냈을까요?

주몽은 졸본부여의 계승자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백제인에게 주몽은 고구려의 시조가 아닌 졸본부여의 계승자도만 인식되었기 때문에 동명왕묘를 세우게 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유리왕의 고구려와 경쟁적인 계승의식을 더욱 분면하게 드러낸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