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형에 처해진 조선의 어우동은 기생이 아니었다
조선 성종때 희대의 성추문 스캔들의 주인공인 어우동은 기생이 아닌 명망있는 양반 집안의 여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지승문원사 박윤창의 딸로 완실 종친인 태강수 이동과 혼인했는데 조선의 학자 성현이 쓴 '용재총화'에서는 어우동이 어느날 집에 온 은그릇 장인에게 반해 내실로 끌어들여 음탕한 짓을 하다가 남편에게 들켜 친정으로 쫒겨났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이후 자유부인이 된 어우동의 연애 행각은 더 대담해지기 시작하는데,,
왕실의 종친과도 바람을 피우고 장내에 소문이 퍼지자 급기야 당시 임금이었던 성종까지 나서게 되었던 것이죠, 3년 동안 신분을 따지지 않고 수십명의 남장들과 간통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성종은 유교 국가의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480년 어우동을 극형에 처했다고 합니다.
풍기를 문란케 한 희대의 방탕한 여인으로 보이는 어우동에 대해 역사학자 권경률은 다른 평가를 하고 있는데,, 아내였던 폐비 윤씨의 권력의지에 두려움을 느낀 성종이 여자들을 구속하는 유교 통치 체제를 위해 처형시킨 희생양이었단 것입니다.
이 책은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역사에 어우동처럼 시대상황에 맞게 삶이 각인되어 버린 여성들을 재조명 하고 있습니다.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선택했지만, 사회구조와 시대상황에 희생되었던 여성들인 것이죠,
이들의 삶을 남성과의 관계, 사랑을 통해 조망한다는 점이 새로우며 사랑을 통해 남녀구도를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사랑은 가장 사소하고 개인적인 역사지만 동시에 가장 사회적인 관심사다'라면서 한국사의 지배층은 남녀의 사랑을 다스리는데 많은 공을 들였고, 또 사랑을 이용해 자신들의 권력욕을 채우고자 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