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혁명(1918년)과 히틀러 나치의 뮌헨쿠테타 그리고 '나의투쟁'
독일은 1918년 독일혁명으로 공화국이 되었고, 1919년에는 바이마르에서 헌법을 제정했습니다.
이 헌법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으로 알려졌는데, 이 당시의 독일을 바이마르공화국이라고 하면, 대통령에서는 사회주의당의 에베르트가 당선이 되었습니다.
독일은 베르사유조약에 따라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는데, 그 금액은 런던 회의에서 1,320억금 마르크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였습니다.
하지만 연합국도 독일이 이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독일 또한 지불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지불은 지체되었던 것이죠,
프랑스는 배상금 지불의 지체를 이유로 벨기에와 함께 1923년에 독일의 중요한 공업 지대인 루르를 점령합니다. 그러자 독일정부는 노동자에게 소극적인 저항을 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적극적인 저항, 즉 무기를 들고 싸우거나 하면 또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것을 막으면서도 저항한다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파업을 하도록 지시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파업으로 생산을 중단됐는데도 노동자의 급료는 계속해서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물자 부족이 일어나고, 그 결과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는데, 통화 가치는 폭락해서 1914년에 비해 1조분의 1까지 내려갑니다. 이를 현재에 비교한다면 1000원짜리 껌 한통을 사려면 1000조원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지폐는 이미 휴지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죠,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 나치는 뮌헨에서 쿠테타를 일으키는데, 그들이 생각한 것은 전년도에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가 벌인 로마진군이 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치는 쿠테타에 실패하고 히틀러와 그 동료들은 투옥됩니다. 이때 히틀러는 무력을 쓰지 않고 정권을 탈취하는 방법으로 선전 활동을 택하기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가 투옥 중 구술 필기로 저술한 것이 "나의 투쟁" 입니다.
하지만 이때의 나치는 아직 군소정당에 불과했습니다.
** 히틀러 나의투쟁 **
히틀러의 저서, 뮌헨쿠테타가 실패한 후 옥중에서 구술 필기시킨 것이다.
상권은 1925년, 하권은 1926년에 간행. 상권에서는 자전(自傳)을, 하권에서는 뮌헨쿠테타까지의 나치에 대해 기술했다.
현대 대중사회 비판과 반민주주의, 반공산주의, 반유대주의 사상을 전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