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회담(Munich Agreement) 그리고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정책(宥和政策) 붕괴
1938년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병합합니다.
이때까지의 독일은 이를 두고 아직 자국 문제, 또는 민족 문제라고 변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제군비선언은 독일의 내정(內政)의 문제며 라인란트는 독일의 영토이고 오스트리아를 병합해도 민족 통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인 것이죠, 하지만 독일은 그 다음으로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 지방의 할양을 요구하고 나섭니다.
지도를 보면, 체코슬로바키아는 독일에 뿌리를 박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는데, 때문에 국경 부근에 많은 독일인이 살고 있다는 것이 할양의 요구의 이유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나라의 영토를 달라는 것과 다를바 없으므로 문제가 되는 것이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뮌헨에서 회담을 열었는데,,, 참석자는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프랑스의 달라디에, 그리고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 이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표자가 빠진채 회담이 이루어졌고,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정책(宥和政策)에 의해 독일의 요구가 인정되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체코슬로바키아를 위해서는 싸우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히틀러는 이것을 영토에 대한 마지막 요구라고 말해놓고, 이듬해에는 체코슬로바키아를 해체해 체코를 병합하고 슬로바키아를 보호국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폴란드에 대해서도 폴란드회랑에서의 특권이나 단치히의 할양을 요구했습니다.
히틀러는 이것도 유화정책에 따라 인정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소련은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의 침략을 인정하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고 1939년 8월 23일에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합니다.
나치즘과 코뮤니즘(공산주의)의 제휴에 세계는 놀라게 됩니다.
네빌 체임벌린은 그때서야 자신의 정책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화정책(宥和政策)은 여기서 붕괴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