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성왕(주몽)의업적, 역사, 생애, 신화, 고구려왕조실록
-고구려 제 1대와 동명성왕(주몽)-
재위기간 : 서기전 37년 ~ 서기전 19년, 18년
주몽이 대소의 위협을 피해 망명하게 된 졸본부여는 일명 구려국이라고 하는 곳으로 흔히 '고리''구리'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구려의 현재 위치는 중국 요령성의 집안, 갈림성의 통화와 자성강, 장자강 유역 일대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구려국으로 탈출을한 주몽은 대소의 병졸들에게 쫒겨 모둔곡이라는 계곡까지 도망하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재사, 무골, 묵거라는 세명의 동지를 만나게 됩니다. 동명성왕은 자신의 신분을 밝힌후 재사에게는 극씨, 무골에게는 종실씨, 묵거에게는 소실씨등의 성을 내려줍니다. 졸본 부여에 주몽이 도착할 당시 부여왕은 아들은 없고 딸만 세이 있었는데 부여왕은 주몽을 보자 그가 비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한번에 알아보고 둘째딸을 주몽에게 시집을 보냅니다.
둘째달인 소서노는 주몽과 혼인하기 전 우태라는 사람과 혼인하여 비류와 온조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우태가 죽은 후 졸본에서 살다가 주몽을 만나 재혼을 한 것입니다.
그이후 부여왕이 죽자 주몽이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며, 국호를 구려에서 '숭고한' '위대한'이라는 뜻을 가진 고를 덧붙여 고구려라 칭하였으며 또한 자신의 해씨성을 버리고 고구려의 고를 따서 고씨성을 취하게 됩니다.
항간에서는 고구려의 역사가 700년이 아닌 900년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것은 주몽이 나라를 세울 당시 무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고조선 말기부터 구려라고 하는 나라가 유지되고 있었으며 동명성왕에 의해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다시 일어선 것으로 판단한 것이죠
또한 고구려 본기에 실린 사론에 "고구려는 진나라, 한나라 이후부터 중국의 동북쪽 모서리에 있었다"라는 내용도 고구려가 진나라때부터 존재 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김부식이 고구려의 개국을 신라보다 뒤에 두려고 고의로 고구려의 역사를 왜곡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어쨋든 고구려를 세운 주몽,, 동명성왕은 국가의 위상을 일신하기 위해 대대적인 영토확장 정책을 실시하였으며 변방의 말갈족을 평정해 말갈이 국경을 넘보지 못하게 하였으며 비류국을 고구려에 복속 시키게 됩니다.
비류국은 왕인 송양은 두명의 왕은 필요가 없다하여 버티다가 결국 항복하고 마는데 주몽은 비류국을 "옛 땅을 회복했다"는 뜻의 '다물'로 개칭하고 송양을 그곳의 왕으로 봉했습니다.
비류국을 정복한 주몽은 서기전 37년 7월 마침내 졸본성을 완성하여 국가 위상을 한층 높이고 지속적으로 영토확장 전생을 수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