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콜라 철학에 대한 업적
초기 스콜라 철학자들의 주요쟁점이자 '보편논쟁'의 핵심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기독교 철학에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토마스 아퀴나스는 도그마의 함정에 빠져 배타적 사상을 가진 장시의 사람들에게 두 종류의 진리성을 말하고 있다. 먼저 기존의 기독교적인 사고방식에 의하 사람의 인지능력을 단지 하나의 현상으로 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을 금서로 규정한 기독교 사상을 수정하여 인간의 철학적 인지능력을 벗어나는 형이상학적이고 초월적인 인식의 영역을 신학의 영역으로 정리하면서 철학의 궁극적인 진리성을 신의 은총으로 승화시키는 업적을 남기게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철학적 업적 역시도 신의 은총을 밝히는 연구로 규정해 그동안 종교의 절대성을 위해 애써 외면하던 철학과 웃으며 화해를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을 수용하여 구체적인 사물을 형성하는 '질료'와 영원불멸의 본질인 '형상'이 있는 것으로 보았는데 순수한 본질인 '형상'을 신이라고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공감은 하지만 신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어떻게 순수한 본질인 신을 인식할 수 있을까?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의 이성적 인식능력을 '형상'의 범주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신과 같은 절대적 '형상'을 인식하는 능력은 없지만 '질료'의 결과물인 육체에 '형상'의 흔적인 이성을 덧씌움으로써 신의 영역과 사물의 영역을 잇는 매개물로서의 인간을 정의한 것이며, 또한 그는 절대적 믿음을 전제로 했던 신학적 인식 방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경험을 통한 놀리적 인식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들면 토마스 아퀴나스는 감각을 통해 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다섯가지 방법을 제안했는데.
①사물의 운동성, ②만물의 질서와 규칙성, ③생물의 숙명적 필연성, ④성장의 단계성, ⑤사물의 방향성과 목적성을 보편적 감각의 경험으로 인식할 수 있는데 그 주관자가 바로 신이라는 것이다.
이와같이 인간이 가진 이성의 힘을 통해 신을 인식하고 따르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은 그가 죽은후에 반대세력이었던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결국 도미니코 수도회의 공인철학으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1879년이 되어서야 전체 카톨릭교회의 공인된 철학으로, 1931년에는 교황청의 지시에 의해 신학교에서 강의하는 철학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학설과 원리를 따라야 하는 규정이 제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