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역사_ 적벽대전의 배경과 결과 = 삼국정립의 계기가 되다,,,
중국 역사상 매우 유명한 전투인 적벽대전은 서기 208년에 벌어지게 됩니다.
당시 조조는 중국 북부를 완전히 통일하고 형주와 강동을 향해 백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중,,,
이에 당황한 손권에게 제갈공명은 연합을 제의하며 손권의 군사 3만과 유비의 수상부대가 공동작전을 펼치게 됩니다.
조조의 군사는 적벽의 강언덕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모두들 북방 출신인지라 풍토병에 시달리는데다 수전에 익숙하지 못해서
배들을 쇠고리로 연결하고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 배가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이른바 연환선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알아차린 주유의 부장 황개가 계책을 마련하는데,,,
"조조군은 배의 꼬리와 머리가 맞닿아 그 진퇴가 자유롭지 못하니 화공으로 일거에 격파할 수 있습니다."
주유는 몽충, 투함 10척에 마른 섶과 갈대를 가득싣고 기름을 부은 다음 포장을 덮고 깃발을 꽃게 합니다
그 뒤에는 쾌속선이 따랐습니다. 준비를 마친 후, 부장 황개로 하여금 항복하겠다는 편지를 보내도록 합니다
황개가 거느린 전선이 나타나자 조조의 군사들은 환호하기 시작합니다
"저기봐라, 황개가 항복하러 나온다"
1km 지점까지 다가갔을 무렵, 황개의 신호에 따라 가득 실은 섶과 갈대에 일제히 불이 당겨졌습니다.
때마침 불어온 동남풍을 타고 황개의 선단은 맹렬한 불꽃을 일으키며 조조의 함대로 돌진해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쇠고리에 묶인 조조의 배들은 꼼짝할 수 없었는데,, 삽시간에 일대는 온통 불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주유의 정예부대가 종횡무진 활약하여 조조 군사들의 목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습니다
적벽 일대는 문자 그대로 생지옥이 되었습니다
조조는 간신히 목숨만 건져 도망치게 됩니다.
만약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승리를 하였더라면 중국천하는 이때 조조의 손에 통일이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당대의 명전략가였던 그도 남쪽 지방의 변화무쌍한 기후, 특히 계절풍에 대해선 무지했던 것이었습니다.
만약 바람의 방향이 동남풍으로 바뀌는 것을 알았더라면 지략가인 조조가 연환선을 허락했을리 절대 없었을 것입니다.
하여간 이 전투를 계기로 조조의 세력은 굉장히 위축되고, 유비는 형주와 익주를 얻어 발판을 굳히게 되었으며, 손권은 강동을 지키면서 동남쪽으로 그 세력을 뻗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위나라, 오나라, 촉나라의 삼국이 정립되는 사건이 된 것이죠
이로부터 약 80년 후인 서기 280년에 위나라의 사마염이 삼국을 통일하고 진을 세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