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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전/역사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작품 세계와 행복하지 못했던 생활고 그리고 성공담

by show쇼 2022. 9. 20.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작품 세계와 행복하지 못했던 생활고 그리고 성공담

 

클로드 모네는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다. 전통적인 그리기 법에서 벗어나 색채와 색조, 질감에 초점을 맞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인상파 화가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로는 클로드 모네를 비롯해 반 고흐와 고갱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아주 치열하고 침울한 삶을 살았던 클로드 모네는 어떤 숨은 사실들이 있을까 살펴보도록 하자.

 

 

모네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큰 재능이 있었는데, 어떤 교육을 받은적은 없지만 르아브르 미술 중학교에 입학했을 정도로 큰 재능을 타고났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유명한 인상파 화가이기 이전에 캐리커쳐를 매우 잘 그렸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어떤 사물이나 사람의 특징을 과정 해서 재밌게 그리는 캐리커쳐를 주요 수입원으로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모네의 재능을 바로 알아본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화가 외젠 부댕이었다. 그는 모네의 능력인 인물과 사물의 특징을 빠르게 잡아내는 것을 풍경화로 옮겨 볼 것을 설득하는데, 클로드 모네는 부댕의 가르침에 따라 노르망디 항구 마을인 르아브르의 바다와 구름 가득한 하늘에 대한 인상을 품게 된다. 이후 어른이 된 모네는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파리에서 공부를 이어갔고, 당시 르누아르, 바지유, 시슬레와 같은 화가들과 친분을 돈독히 하며, 함께 새로운 예술 세계의 꿈을 꾸게 된다. 하지만 이때를 시작으로 모네의 인생에 큰 어려움이 따르게 되는데, 사랑했던 여인과의 결혼을 집안의 반대로 이루지 못하고, 이로 인한 가족과의 갈등으로 부모님의 지원금도 끊기게 된다. 큰 어려움 끝에 그 여인과의 결혼은 성사되었지만 행복은 잠시뿐, 그는 아무의 도움도 받지 못하며, 팔리지 않은 그림 등으로 인해 가족은 가난을 겪게 되고,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을 감당하지 못했던 모네는 센강에 투신을 하려는 무모한 짓까지 저지르게 된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모네에게 후원자가 나타나면서 그는 힘을 내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친구들과 자신들만의 그림을 보여줄 전시회를 계획한다. 바로 이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이 '인상, 해돋이'로 이로 인해 뜻하지 않았던 인상파 화가 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인상파 화가는 인정받지 못하는 어쩌면 조롱을 위해 붙여진 이름과 같았다. 프랑스 문화를 동경하던 미국의 부자들과 파리의 부호들 덕분에 클로드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은 주목을 받게 된다. 이는 곧 인상파의 전성기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고, 모네는 인상파 초기 모임의 핵심 멤버이자 리더로서 역학을 수행하며 본인과 동료들의 예술 세계를 크게 알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행복과 함께 찾아오는 것이 언제나 불행이듯, 그에겐 큰 어둠이 닥치는데, 이때 부인이 둘째를 낳은 후 서른두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큰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한찬 뒤 모네는 친구 클레망소에게 '아내의 얼굴색이 죽음으로 미묘하게 변해가는데, 그것을 그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고통스러웠다' 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모네가 단순히 빛의 변화에 따라서만 그림을 그렸다고 하기에는 여러 방향으로 전해지는 길고 어지러운 붓질에서 의식을 잃어가는 아내를 바라보던 괴로운 마음이 드러난다. 아내를 잃은 큰 실의에 빠진 모네는 그림 그리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대신 싸늘한 겨울 풍경의 고유한 빛을 담기 위해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며 아내에 대한 마음을 달래곤 하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빛의 매력에 빠진 모네는 빛을 연구하면서 그의 작품을 더욱 깊게 그려 나간다.

 

 

그러던 어느날 정원의 연못에 떠 있는 수련을 보고 본인에게 영감을 주는 대상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1897년부터 모네는 물과 반사광의 풍경인 [수련] 연작을 무려 250점이나 그리게 된다. 하나의 사물을 대상으로 250개나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지금도 그의 작품을 대단하다고 하는 이유다. 1912년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 많은 말들이 있는데, 이유는 모네가 1912년 화가로서 치명적인 백내장에 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네는 여기서 멈추기보다는 다시 한번 붓을 잡고 그림을 그려 나간다. 당시 프랑스의 총리이자 모네의 친구였던 조르주 클레망소가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을 위한 대형 [수련] 연작을 의뢰했고, 클로드 모네는 인생 마지막 열정을 그려 나가기 시작한다. 그 열정으로 고난과 역경을 이겨 나가면서 자신의 목표를 위해 전력 질주를 하였고, 마지막 작품을 완성한 채로 1926년 숨을 거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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