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백가의 춘추전국시대 그리고 550년간의 역사
제자백가가 활약한 춘추전국시대는 평화의 시대가 아니라 약육강식의 군웅할거 시대였다고 합니다.
제자백가의 사상은 혼란한 중국천하를 바로 잡으려는 현실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춘추전국시대란, 중국천하를 지배하던 주나라가 왕실의 내분과 이민족의 침입으로 도움을 호경에서 동쪽의 낙양으로 옮기면서 이름뿐인 존재가 되고, 각처에서 내노라하는 제후들이 나타나 천하를 제패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인 시대를 말합니다.
수도를 낙양으로 옮긴 기원전 770년을 기점으로 삼아 이전을 서주시대, 이후를 동주시대라고 하니 춘추전국시대란 동주시대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는 약 550년간 이어졌는데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403년까지를 춘추시대, 이후를 전국시대라 합니다.
이는 각각 당시의 역사를 기록한 책인 "춘추"와 "전국책"에서 따온 이름으로 "춘추"는 공자가 쓴 것이며, "진국책"은 당시의 여러 기록을 모아 전한 말에 유향이 편찬한 것이라 합니다.
춘추시대에 100여개를 웃돌던 제후국은 전국시대에 이르러 10여개로 통합이 되는데 춘추시대에 가장 강력했던 5개 제후국을 가리켜 '춘추오패'라 하고 전국시대에 가장 강력했던 7개 제후국을 일컬어 '전국칠웅'이라고 합니다.
'와신상담' '오월동주'란 말을 있게 한 오나라 왕 부차와 월나라 왕 구천은 춘추오패에 드는 인물들 입니다.
춘추전국시대는 정치적으로는 혼란기였지만 사회적으로는 변화 발전기였습니다. 철로 만든 농기구를 널리 사용하고, 농사에 소를 이용하게 되어 경작지와 농업 생산력이 크게 늘었으며, 교통과 상업이 발달하고 화폐가 널리 쓰이게 됩니다.
그와 함께 정치사상과 학문이 발달하는데, 패권을 노리는 제후들이 저마다 뛰어난 인재를 등용하여 부국강병과 정치안정을 이루고 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백가가 등장하면서 활약하게 된 데는 이와 같은 복잡한 정치, 사회적 사정이 깔려 있습니다.
기원전 221년, 전국칠옹 가운데 하나였던 진나라 왕 정이 최후의 승리를 거두고 중국을 통일하니, 이가 바로 진시황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