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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전/역사80

바이킹족 역사 (노르만족) 피요르드만 주위의 만의주민,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노르만족(바이킹족)은 빙하기 침식해서 만들어진 피요르드만 주위에서 살았기 때문에 '바이킹' 즉 '만의 주민' 이라고 불렸다.바이킹족은 노르웨이에서 아이슬란드에 이르는 거리를 단 9일만에 항해하는 놀라운 항해 기술 덕분에 강과 바다를 오가면 무역과 이주, 약탈로 세력권을 넓혀 나가게 된다. 그 중에서도 스웨덴 인들은 발트 해에서 시작하여 러시아로 흐르는 하천을 거슬러 올라가 카스피 해와 흑해에 이르는 강의 무역로를 개발해 비잔틴 제국, 이슬람 제국 등과 활발한 상업 활동을 벌이게 되는데,, 슬라브 인으로부터 뱃사공이라는 뜻으로 루스라고 불렸던 스웨덴계 바이킹족은 슬라브 인과 결혼하여 모피 집산지인 러시아의 무역 중계 도시인 키예프 등을 연결하기도 하였다.그런데 투르크계 유목민이 볼가 강 하류를 포함한 초원.. 2020. 4. 2.
중국의 여황제 '측천 무후' 무조의 역사 배경, 중국 최고의 여장부라고 불려지는 '측천 무후' 측천 무후의 본명은 무조이며 목재 상인의 딸로 태어났다.어릴때 부터 뛰어난 미모를 가진 무조는 14세때에 당나라 제2대 황제은 태종에 의해 궁궐에 입궐하게 되고, 무미라는 이름을 가진 궁녀가 된다. 태종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른 고종은 황태자 시절부터 아버지의 후궁은 무미를 사모하게 되고, 그가 병석에 누운 태종을 병문안 갔다가 시중을 들고 있던 무미의 아름다운 모습에 그만 반하고 말았던 것이다. 무미는 고종의 사랑을 받게되고, 소의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지만, 무미는 소의에 만족하지 못하고 황후의 자리까지 노리게 된다.무미는 먼저 자신의 적인 소 숙비를 쫒아낸 다음 왕 황후까지 모략하여 마침내 황후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다.그러자 고종은 무 소의를 황후로 .. 2020. 4. 1.
당나라의 멸망, 제6대 '현종'과 '양귀비',, 그리고 서기 878년 '황소의 난' 당나라는 서기 618년에 세워져 약 3백여 년 동안 문화와 경제에서 매우 풍족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특히 8세기 전반까지 발달된 당나라의 문명과 예술 문화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상당한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향락 생활이 계속되면서 국가는 점점 어지러워지고, 백성들은 무거운 세금을 내야만 했는데,당나라가 본격적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한 것은 제6대 현종 때 부터로 현종은 즉위 초에는 매우 현명한 황제로 손꼽혔지만, 유명한 절세 미인이었던 양귀비를 만나면서 부터 정치를 멀리하고 나라는 점차 기울어져 간다. '황소의 난'을 일으킨 황소는 산동성에서 부유한 소금 장수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황소는 어려서 영리하고 재주가 많았으며, 나이가 들면서 과거를 보았지만 신분 때문에 벼슬길에 오를수는 없었다.때문.. 2020. 3. 31.
로마제국의 멸망 배경, 페르시아의 공격과 게르만족의 침입 로마제국의 멸망 배경, 페르시아의 공격과 게르만족의 침입 로마의 영웅인 카이사르의 정복 전쟁 후로 로마 제국은 계속 지배 영역을 넓히면서 남쪽으로는 이집트를 비롯하여 서쪽으로는 페르시아, 북쪽으로는 페르시아, 북쪽으로는 영국과 스칸디나비아까지 세력을 뻗치게 된다. 하지만 3세기 초에 페르시아가 다시 일어나고 게르만 족이 서서히 세력을 키우면서 점점 영토가 줄어들고 대제국을 관리하는 행정력도 떨어지게 된다. 로마 제국의 이런 분위기는 대외 관계에서 더 뚜렸하게 나타나는데 그 무렵, 로마 제국의 동북 쪽에서 게르만 족이 라인강과 다뉴브 강을 넘어 물밀듯이 쳐들어 왔고, 동쪽에서는 로마에 딸린 몇 개의 주들이 때마침 일어난 페르시아에 넘어가게 된다. 이런 중에 대외적인 위기는 3세기 중엽에 데키우스 황제가 게.. 2020.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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