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비극의 탄생의 내용과 니체의 사상
니체의 사상의 기반은 부정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이고 자신의 어린시절을 이끌었던 믿음의 세계인 기독교에 대한 부정과, 이성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던 형이상학적인 전통을 부정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임으로서 니체의 사상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죠, 그가 어린 시절에 이토록 철두철미하게 진실로 믿었던 기독교적인 정의의 세상은 19세기말에 자신이 보고 체험한 혼란한 탐욕의 세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던 것입니다.
"니체 차라투스트리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기독교의 형성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조로아스터교(기원전 6세기)의 창시자인 차라투스트라(황금의 낙타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를 앞세움으로써 서구의 중세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영향력을 준 절대적 신앙의 허위성을 조롱하고 있는 것이죠, 내용의 뜻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신께서는 그렇게 말했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식의 빈정거리는 말투로 비꼬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만인의 정신적 지주인 신의사망(보편적 절대성의 붕괴)을 선언해 버리고 오히려 차라투스트라의 인간적인 모습을 차용하여 동양적인 윤회사상과 해탈도에 이른 각자의 의미와 유사한 '위버멘쉬(Übermensch)' 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궁극의 구원은 결국엔 신과 같은 다른곳의 힘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의 의지, 즉 "권력의 의지"에서 말한 자신과 인류를 이끄는 힘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죠,,
니체의 또 다른 부정은 기존의 질서와 권위가 가진 도독성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영감을 받은 "니체 비극의 탄생"에서는 형식과 엄격한 질서의 상징인 아폴론과 충동과 무질서의 상징인 디오니소스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대의 비극을 반영하면서 그 동안의 역사를 이끌어온 절대적 가치의 이면을 조심히 고찰하여 그리스의 찬란한 문명의 원인을 현실적 비극에서 유래한 반작용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독교적, 철학적 도덕의 표방이란 결국 부도덕의 반증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허위에 찬 도덕을 부정하고 디오니소스적 몰락을 통해 위해한 문명의 부활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비극의 탄생"에 영감을 주었던 바그너의 음악에 감격했던 니체였지만 1876년 바그너의 오페라를 보았다가 기독교적인 권력과 결탁한 바그너를 보고난 이후 니체는 바그너와 결별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니체의 사상은 결국엔 혼란의 늪에 빠진 19세기 이전의 가치를 철저하게 부정하고 개인 주관의 현실적인 가치를 선언한 데에 큰 의미가 있는데요, 숭상해야 할 도덕과 비루한 현실이라는 이중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당시 시대로서는 당연한 시대적인 요청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인 것이죠.
니체의 사상에 대한 평가는 전통적 가치의 전복에 따른 수용의 태도에 의해 극단적으로 구분이 되는데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영감을 주었던 위대한 인물로 기록되기도 하며, 염세적 정신병자라거나 무신론자에 인종차별과 전쟁을 옹호한 사람으로 지탄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니체의 사상은 20세기 실존주의의 모태가 되어 왔으며, 지금까지도 그의 영향력은 여전히 예술과 문학에서 큰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