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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출현, 불교의 유래와 석가모니, 석가모니의 깨달음 불교의 역사 불교의 출현, 불교의 유래와 석가모니, 석가모니의 깨달음 불교의 역사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는 지금으로부터 2500여년 전 중인도 히말라야 남쪽의 산기슭의 가비라위성에서 성주인 정반왕과 황비인 마야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실달라로, 왕자인 그는 부자유라는 것을 몰랐으며, 모든 것에서 풍족함을 누리면서 살았다고 한다.하지만 이렇게 부러울 것이 없이 살던 석가모니였지만, 왕궁 밖으로 나갈 때마다, 세사을 살아 가면서 온갖 고통을 받고 괴로워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석가모니는 날이 갈수록 인생에 대해 점점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런 모든 고통에서 인간을 구할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복잡하게 하였고 그를 밤낮없이 괴롭히게 된다, 석가모니는 마침내 사랑하는 .. 2020. 3. 20.
유가(유교)의 공자(논어)와 노자, 성선설과 성악설 유가(유교)의 공자(논어)와 노자, 성선설과 성악설 유가는 유교의 학자나 학파를 가리키는 말로 대표적인 성인으로 꼽히는 공자와 맹자는 효우(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의 가족 도덕을 밑바탕으로 하는 인간의 으뜸가는 덕목을 인이라 하고, 이것을 정치의 기본으로 삼았다.공자의 이런 주장은 그기 쓴 "논어"라는 책에 나와 있는데, 중국의 전국 시대 말기의 순자도 유가였으나, 인간의 원래 성품은 착하는 맹자의 성선설에 대해, 순자는 인간의 성품은 원래 악하다는 성악설을 주장하였다. 한편, 노자는 중국의 사상가 중에서 예부터 백성들에게 가장 친근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학자로 노자는 또 중국의 민간 종교로 많은 백성들이 믿고 있는 도교를 처음으로 내세우기도 하였다.노자에 대한 이야기는 사마천이 쓴 "사기.. 2020. 3. 19.
바벨탑과 공중정원 (메소포타미아 문명) 신 바빌로니아 왕국)노아의 대홍수 바벨탑과 공중정원 (메소포타미아 문명) 신 바빌로니아 왕국)노아의 대홍수 앗시리아의 멸망 후 오리엔트 세계는 신 바빌로니아와 메디아, 소시아에서 일어난 란디아와 다시 독립한 이집트를 합쳐 4개국 대립 시대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 메소포타미아 평야를 지배하던 신 바빌로니아 왕국이 가장 강력했었다.신 바빌로니아의 수도인 바빌론은 옛 바빌로니아 때보다 더욱 발전하게 되고, 강대해 졌으며, 여러 신전과 궁전즐이 하늘 높이 웅장하게 솟아났었다. 이 중에서 바벨탑과 공중 정원은 특히 유명한 유적으로 남아 있다. 바벨탑데 대한 이야기는 '구약성서'의 창세기 제 11장에도 나와있는데, 이에 따르면 여호와가 인간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을 보고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 40일 동안 많은 비를 내려 온 세상을 물로 가.. 2020. 3. 18.
로마의 평화_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의 역사, 탄생과 멸망 폼페이의유적 로마의 평화_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의 역사, 탄생과 멸망 폼페이의유적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라는 말이 있듯이, 로마와 길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련이 있다, 기원전 7세기경에 라티움 인이 세운 도시 국가인 로마는 그 후 발전을 계속해 가면서 대제국이 되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군대의 역할이 상당했던 것이다.이 군대는 공병대도 있었으며, 그들의 임무는 길을 만들어 점령지와 로마를 잇는 것이었다.공병대가 닦은 길은 매우 단단하고 튼튼했는데, 길은 곧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곧은 길을 닦기 위해서 산에 터널을 뚫기도 하고, 골짜기에 높은 다리를 놓기도 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길의 전체 길이는 8만5천 킬로미터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로마 제국은 초대 황제가 나라르 .. 2020. 3. 17.
인더스문명(인도)의 역사와 번성, 인더스문명의 멸망(모헨조다로와 하라파) 인더스문명(인도)의 역사와 번성, 인더스문명의 멸망(모헨조다로와 하라파) 인도의 서북쪽을 흐르고 있는 인더스 강은 길이가 약 3천km 정도인데 기원전 2300년경 전부터 이 강의 유역에서 인더스문명이 번성하였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이 곳에 있던 모헨조다로와 하라파는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와 활발한 무역을 하였고, 이들 두 나라는 모양과 크기가 똑같이 구운 벽돌로 세워져 있으며, 포장된 도로와 하수 설비 및 성과요새, 대중 목욕탕 외에도 여러개의 곡물 창고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이 중에서 모헨조다로는 사방이 1.6km로 도시 계획에 의해 정확하게 세워지게 되는데, 너비가 10미터인 큰 길과 2~6m인 작은 길이 바둑판 처럼 시가지를 나누고 있었으며 집집마다 오수 저장 탱크를 갖추고 있어, 3/4 정도가 .. 2019. 12. 11.
모헨조다로의 유적_ 인더스문명의 유적 모헨조다로의 유적_ 인더스문명의 유적 인더스강의 하류쪽 서쪽인 파키스탄에 '모헨조다로' 즉 '죽음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거칠고 쓸쓸한 언덕이 있다.그 언덕 위에는 탑의 흔적이 있는데, 1922년쯤에 그 탑의 흔적을 발견했을 때 그 아래에 무엇인가 오래 된 유적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발굴이 시작 되었다.그리하여 약 10여년에 걸친 모헨조다로의 대규모 발굴이 진행되었으며, 마침내 기원전 3500년경부터 1000년경까지 꽃피웠던 인더스 문명의 유적이 발견이 된다. 여기는 지금으로부터 5천년 전 금석기를 사용했던 문명시대의 최대 도시 유적으로, 뛰어난 도시 계획에 의해 건설된것으로 보고 있다.도시 서쪽의 중앙은 진흙과 벽돌로 6~12미터 정도의 인공적으로 쌓아올려 주위를 압도하게 만들었으며, 규모는 확.. 2019.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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