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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전/역사

일제강점기에도 죽지 않은 우리의 연예인(기생)들, 지금봐도 우월

by show쇼 2019. 10. 31.



1. 현매홍과 김옥엽




평양 기성권번 출신의 현매홍과 김옥엽은 서울 상경 후에 한성권번과 조선권번에 적을 두며 많은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현매홍은 가곡과 가사, 시조에 능통 하였으며 김옥엽은 초창기에 는 궁중무용과 서도잡가와 경기잡가 그리고 30년대 중반 부터는 가곡과 가사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뽐냈다고 하네요.

특히 김옥엽의 '수심가'는 워낙 뛰어나다는 찬사를 받으면서 당시 장안 최고의 인기를 누린 연예인중 한명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문학가 김동환과의 로맨스는 인구에 두고두고 화자가 되고 있습니다.

현매홍은 기생조합 최초의 잡지인 '장한'편집인중 한명으로 활동 하였으며 일동축음기레코드 등에 그녀의 목소리가 전해져 옵니다.

김옥엽 역시 빅타, 콜롬비아, 태평 레코드 등에 수십장의 음반을 발매 하였습니다.



2. 오산월


산월이라는 이름은 그 당시 기생 중에서 가장 흔한 이름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손병희 선생의 후처가 명월관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그 유명한 평양기생 주산월이며 1920, 1930년대 배따라기로 일세를 풍미한 소리꾼이 서도기생 김산월 이었습니다. 특히 김산월은 배따라기 같은 민요, 장한몽 같은 가요곡 외에도 도월색과 이풍진 세상(희망가)을 음반으로 녹음하기도 하였습니다. 오산월은 이들 두 산월 만큼 유명한 기생은 아이넜지만 외모로 볼때 상당히 유명한 기생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3. 김영월



서도 소리로 일세를 풍미하며 많은 일화를 남긴 장학선 등과 함께 대표적인 평양기생으로 평양의 기성권번에서 학습을 한 김영월은 소리에도 능통하였으나 연기쪽에 일찍이 소질을 보이며 많은 활동을 한 기생이었습니다. 1927년 개봉한 영화인 '낙양의 길'의 주인공







4. 윤채선

요즘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듯한 모습

현대적인 마스크를 가지며 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윤채선은 대정권번 소속의 예기로 특히 조선 무용에 능통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활동시기가 다소 짧아서 많은 자료가 남지는 않았습니다.



5. 이옥란

소박하면서도 애수가 넘치는 목소리를 가졌다던 이옥란은 한성권번에 적을 두고 있었으며 국악과 양악 양쪽을 오가며 활동 하였습니다. 특히 콜럼비아레코드에 취입한 가요곡 기생수첩, 눈물의 시집, 꽃같은 순정 등의 노래는 대중들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6. 장연홍

일제강점기 기생 중에서도 최고의 얼장으로 인정 받는 장연홍은 평양 기성권번 출신으로 예능계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했으며 오히려 의식기생, 사상기생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중국 유학후의 행적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